계성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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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14 08:02
나와 선조(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91  
.....누구나 先祖(선조)를 자랑하고 빛내고자 하여 헛되게 기술한것은 효도가 아니오 종이가 많이 드는 것을 꺼리어 기록할만한 한 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도 또한 효도가 아니다. 先祖(선조)의 事蹟(사적)을 始終(시종) 명백히 할것이니 당시의 敎旨(교지)가 있다면 글자마다 모두 임금의 은혜를 입은 것이니 恭敬(공경)하게 서술할 것이요, 事跡(사적)이 舊譜(구보)에 수록된 것도 또한 반드시 父兄(부형)들께서 다정하게 참여하여 만들었을 것이니 모두 기재하여 후세로 하여금 우러러 思慕(사모)하는 정을 보게함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을유보 서문에서---

.....孝(효)는 愛親(애친)할줄을 알고 悌(제)란 敬長(경장)할줄을 안다.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恭敬(공경)하며여 이를 조상을 높이고 일가를 공경하는데 옮기고 또 일가에 화목하고 人倫(인륜)을 두텁게 한데 옮긴다면 孝悌(효제)하는 기풍이 蔚然(울연)하여 가히 볼만함이 있고 그 世敎(세교)에도 어찌 적은 도움이라 하리요. 우리 宗人(종인)이 어찌 각각 여기에 힘쓰지 아니하리오....
---신해보에서---

.....그러나 보통 사람의 情(정)은 점점 멀어지고 점점 잊어져서 잊은 것이 심하면 그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면 길가는 사람과 같다. ....
---신사보에서---

.....모두 孝悌(효제)를 敦行(돈행)하여 遺業(유업)을 닦으니 구구연하여 君子人(군자인)이 많으니 어찌 雪齋(설재)의 碩德(석덕)과 후손에게 流耀(유요)하여 裒然(부연)히 湖南八家(호남팔가)의 으뜸이 아님을 알리오. 다른 날 學政(학정)을 맡아 賢能(현능)에 오른자 쓰기를 雪齋(설재)의 後孫(후손) 아무게라고 한즉 外裔(외예)된자 어찌 더불어 光榮(광영)함이 있지 않으리오. 佐模(좌모) 바야흐로 옷깃을 여미고 기다리노라.....
---계유보에서---

.....氏族(씨족)에 족보가 있는것이 나라에 史記(사기)가 있는 것과 같다. 또한 堯舜時代(요순시대)의 惇叙(돈서)와 春秋時代(춘추시대)의 謹嚴(근엄)함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 어찌 공경하고 또한 중요하지 아니하리오. 그윽히 생각건대 우리 宗親(종친)이 雪齋(설재) 文靖公(문정공)으로부터 高官大爵(고관대작)이 혁혁하여 爵諡(작시)와 勳號(훈호)며 忠孝(충효)와 文學(문학)이 代代(대대)로 끊어지지 않고 史記(사기)에 글이 끊어지지 않으니 진실로 海東名族(해동명족)이다....
---갑술보에서--- 

.....子孫(자손)으로부터 본다면 각각 分派(분파)의 祖上(조상)이 있으나 그러나 始祖(시조)로부터 본다면 한 할아버지의 孫(손)이 아닌 것이 없다.....
---정사보에서---

※ 1705∼1977 각 서문을 인용하였으며, 나의 先祖(선조)는 ‘吾鄭(오정)의 後裔(후예)’인 ‘나’ 스스로 사랑하고 恭敬(공경)하면서 한 시대를 살으시다 先塋(선영)에 계시는 先祖(선조)님들의 儒業(유업)을 기리며 부끄럽지 않는 後裔(후예)의 삶을 營爲(영위)하여야 할 것입니다. 旣(기) 간행된 先世遺蹟(선세유적)의 文靖公(문정공) 遺蹟(유적), 雪齋書院(설재서원), 鰲山祠(오산사), 月川祠(월천사), 世德祠(세덕사)와 先世遺稿(선세유고)의 行狀(행장) 및 墓碣名(묘갈명), 先世碑文(선세비문) 그리고 亭霽閣(정제각) 堂軒記(당헌기) 마즈막으로 孝烈錄(효열록)의 旌閭(정려), 行蹟(행적)그리고 行狀(행장), 墓碣名(묘갈명), 墓表(묘표)를 틈나는 대로 읽고 읽어 선조의 얼을 잊어서는 아니 되리라 생각합니다.